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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_<휴먼스토리> 복숭아와 계란을 품은 대학교수 (변병문 집사/노경인 권사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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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5-01 18:22 조회1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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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와 계란을 품은 대학교수 (변병문 집사/노경인 권사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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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스트 경영공학 박사, KIST(한국과학기술 개발원) 책임연구원(기술정책 연구실장), 평택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소위 말하는 엘리트 지식인이 현역 퇴임 후 땀 흘리며 육체 노동하는 과수원 농장주로 변신한, 좀 특이한 인생 노정을 걷고 있는 변병문 집사의 삶을 소개하고자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는 그의 농장 '온새미로 농원'을 찾아 갔다. 반려자 노경인 권사가 함께 반겨주었다. '온새미로' 는  '생긴 그대로' 라는 뜻을 지닌 순수 우리나라 말이다. 온새미로 농원은 복숭아와 계란을 출하하고 있다. 

변 집사의 변신은 즉흥적 변신이 아니었다. 교수 은퇴 후 영농 전문대학 학생으로 입학, 20대 젊은이들과  2년 간 함께 공부하고 함께 졸업하고 경기도 이천 장호원에 3,000여평 땅을 마련할 정도의  기획된 변신이었다.  기획된 변신에게는 의례히 궁금한 것들이 따르게 마련이다. 

      

1. 복숭아 농장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현직에 있을 때부터 퇴직하면 농사일을 해 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퇴직 2년 전부터 땅을 물색하다가 이곳 장호원 땅 3,000여 평을 2015년 구매하게 됐다. 복숭아 농사를 선택한 이유는 우선 장호원 이곳 특산물이 복숭아이고 또 복숭아는 여름 과일이기 때문에 여름 한 철 고생하고 나머지 기간은 쉴 수도 있겠구나 해서 선택했다. 복숭아는 고급 과일이어서 소득도 클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 농업에 종사해 보니 복숭아 농사는 수확 후에도 계속 일이 있고 생각과는 다르게 만만치가 않다. 매우 힘 들다. 농사일을 특징 지으라면 아마도 큰 노동에 낮은 소득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일단 시작 했음으로 여기에 승부를 건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2. 남편이 퇴직 후 과수원 농사 한다는데 대해서 권사님은 어떤 입장이었는가?

 

 처음에는 크게 반대했었다. 그러나 제 남편은 경솔하게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고 또 무슨 일이든 한다 하면 꼭 성취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신뢰감은 있었다. 결국 남편의 진지함에 동의했는데 이 농장일 힘 들어 죽겠다. 농장일 절반은 내가 하는 것 같다.

ㅎ ㅎ ㅎ ㅎ

사실은 저렇게 열심히 몰두하며 농장 꿈을 계획하고 펼치고 있는데 내가 동의 안 해 주면 평생 원망할 것 같아서 하는 수 없이 동의했다. ㅎ ㅎ ㅎ 

(노 권사는 힘 들다고 옆에서 연신 불평했지만 농장 경영에 은근히 즐거운 표정이었다.)

 

3. 농장 경영을 위해서 특별한 준비 과정을 겪었다고 들었는데……

 

 농사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기 때문에 뭘 좀 배우고 나서 해도 해야 겠다는 생각에 2015년 가을에 퇴직하고 이듬해인 2016년 3월 바로 '여주농업 전문 학교(2년제 전문 대학)'  원예과(과수 전공)에 입학해서 2018년 졸업했다. 이 학교는 경기도 도립학교로서 200여 학생이 재학하는데 학비며 기숙사 비용이 거의 무료에 가깝다. 20대들과 기숙사에서 함께 합숙하면서 공부했는데 나이 값 하느라 열심히 노력해서인지 수석 졸업했다. 

 

4. 무슨 일이건 초기에 정착 단계까지 어려움이 많은 법인데 특별히 겪은 고충은?

 

 지역 주민 몇이 꾸준히 텃세를 부리며 괴롭히는 것이 아직도 고충이라면 고충이다. 그간 이런 저런 일로 시비 걸며 사직 당국에 고발한 건수가 10여 차례나 된다. 그 때마다 현장 조사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경찰서에 고발돼서 조사받기도 했는데 물론 모두 무 협의 처분 받았다. 내가 무고죄로 역 고발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싸우려고 이 곳에 온 것도 아니고 또 싸울 시간도 아까워서 참고 지낸다. 가급적 그들과 마찰이 없도록 피하면서 지내는데 아직도 골치거리다.  

또 과수원 공부는 했지만 농사 경험이 없어서 초기에 과잉투자나 시행 착오도 좀 겪었다. 

장호원 주민센터, 농협, 이천시청 등으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았다. 초기 정착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5. 복숭아 농장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우리 농장 넓이는 약 3200평 된다. 이 중 1500평 땅에 복숭아 나무 130 주가 있다. 작년에 첫 수확해서 출하했는데 약 330상자(한 상자 당 14 - 20 알) 판매했다.  가격으로는  1,000만원 정도다. 고생에 비해 수입이 너무 적었는데 그 이유는 첫 농사이기도 하지만 화학비료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철저한 유기농 농사를 하기 때문이다. 금년도에는 아마도 작년의 두 배 정도 수입은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6. 유기농 농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수입이 적다면서 왜 유기농 농사를 고집하는가?

 

 유기농 농사란 쉽게 말해서 화학 비료나 화학성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 비료나 천연 살충제를 사용하는 농사를 말한다. 

자연 비료는 한의원에서 한약재 찌꺼기를 얻어다가 닭 분뇨, 돼지 분뇨 그리고 쌀겨를 혼합해서 발효시킨 후 사용하고 천연 살충제는 은행 열매 달인물, 목초액, 백두옹(할미꽃 뿌리) 달인물을 물에 희석해서 농약 대신 사용한다. 이런 작업은 모두 여기서 내가 직접한다. 이런 유기농 농법은 생산량이 화학 제품 사용에 비해 60% 정도로 적고 또 육안으로 보기에 소위 말하는 때깔도 곱지 못하다. 그래서 협동조합 경유 판매보다는 유기농을 선호하는 고객에게 직거래 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내가 유기농을 고집하는 이유는 내가 농약에 노출되어 건강을 해칠까 두렵고 고객도 보호하기 위해서다. 초기에 몇 차례 농약을 살포하고 난 뒤에 두통이 오고 시력이 나빠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이렇게 농사 지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곳에 와서 땅을 팠을 때 지렁이 한 마리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은 어디를 파도 지렁이가 우굴댄다. 또 그 지렁이를 잡아 먹고 사는 두더지도 함께 살게 됐다. 생태계가 살아나고 있어서 뿌듯하다.  

  

7. 온새미로 농원 복숭아는 햇사레 복숭아'로 출하되던데 소비자 품평이 어떠한가?

 

 사실 이 점이 복숭아 재배하면서 불안한 점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생산한 우리 복숭아가 맛이 없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면 어쩌나 했는데 우선 내가 먹어봐도 매우 맛있어서 좀 안심됐고 또 친한 분 몇 가정에게 선물했더니 의외로 극찬했다. ‘어쩌면 복숭아가 이렇게 맛있냐’고. 물론 나를 위로하려는 의도도 좀 있었겠지만 우리 복숭아가 맛있는 복숭아라는 품평은 확실히 받은 것 같아 안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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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머지 1,500평 땅은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금년에 나머지 땅 중 약 1,000평에 사과나무 200주를 심었다. 3년 후 사과 수확이 기대 되는데 사과 재배를 시작한 이유는 복숭아를 지금 보다 더 이상 생산하면 직거래가 어려워질 것 같아서다. 또 복숭아가 여름 과일인데 비해 사과는 가을 과일이고 저장도 할 수 있다. 아울러 여름 철, 가을 철 농사 일을 분산할 수 있고 또 수확과 판매를 길게 할 수 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올 봄에 복숭아 면적 일부를 줄이고 그 땅에 사과 나무를 심었다.

 

9. 양계도 추가했는데 이유는?

 

당초 양계는 계획한 바가 없었는데 내가 유기농을 고집한다고 하니까 모 축산과 교수가 양계를 적극 추천했다. 과수원에 닭을 방목하면 과수에도 좋고 수익성도 높아 진다고 해서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인근 영농학교에서 토종닭 500여마리를 긴급 처분 할 일이 생겨서 우선 그 중 300 마리를 인수해서 양계를 시작하게 됐다. 

요즘 시골에서 축산은 냄새 때문에 민원 발생이 많아서 인·허가 받기가 매우 어려운데 내 경우 양계 축산 허가도 수월하게 받았는데 이 모든 것이 인도하심이 있는 것 같아 감사드린다.

 

10. 양계도 유기농 개념을 적용하는가?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물론이다. 양계장에 가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 양계장에서는 닭 분뇨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또 우리 계란은 날 것으로 먹어도 계란 비린내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사료로 발효 사료를 사용하고 또 닭이 마시는 물에도 유산균이 혼합 된 물을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300마리 닭 중에 알을 낳는 암닭이 250여 마리인데 여기서 하루에 180 내지 200개 정도 계란을 얻는다. 우리 농장 계란이 유기농 계란으로 품질이 좋다는 소문이 나서 판로가 많다. 냉장고에 재고를 쌓아 놀 틈이 없다. 인근 모 회사에서는 직원 선물용으로 우리 계란을 꾸준히 사가고 있고 향상교회 교인들 중에서도 우리 계란을 선호하는 분들이 꽤 된다. 

양계는 아직 사육 공간 여유도 있고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어서 금년 중 200여 마리를 추가 반입할 예정이다.  

 

11. 평생 지식인으로 책상에 만 앉아 지내다가 전혀 새로운 농장 경영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그야말로 전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너무 많다. 이 점이 어렵다. 영농 기술은 학교를 다녀서 그런대로 배웠는데 그 밖에 영농에 부수적으로 필요한 것들, 즉 목공, 전기공, 배관공, 미장공 등등의 기술과 공구 사용법 등은 그야말로 생소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닦치는 대로 공부했고 도전했다. 심지어 포크레인, 지게차 운전 면허도 습득했다. 5만원이면 1.5톤 소형 포크레인을 하루 임대할 수 있는데 그 포크레인을 직접 운전해서 과수원 주변 배수로 공사를 내가 직접 다 했다. 최근에 지은 다목적 비닐 하우스의 전기 공사도 내가 직접 다 했고 닭 사료통이며 산란 상자 등도 내가 다 직접 만들었다.

  

12. 갑자기 배운 기술로 작업하다가 안전사고나 위험한 경우는 없었는가?

 

 위험한 경우가 꽤 있었다. 한 번은 칼로 작업하다가 손바닥 혈관과 신경을 절단하는 큰 부상을 당해서 급히 봉합 수술을 받고 오랫동안 일을 못한 적도 있다.  

 

13.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나의 매일 아침 “여호와를 경외하고, 모든 식물 동물을 사랑하고, 땅을 소중히 여기며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농장 일을 하게 하옵소서” 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나님과 사람들 보기에 아름다운 농장” 이것이 이 농장에 대한 나의 꿈이다. 

노동은 내 의지대로 하지만 결심은 내 의지대로 안 된다. 결실된 수확물의 판매도 내 의지대로 안 된다. 언제나 앞날이 결과가 불 확실하다. 불확실한 일상 속에서 살다 보니  자연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어서 신앙적으로는 사실 더 유익했다. 

주일 예배는 한 달 절반은 향상교회에서 절반은 시골 이곳 전도사님이 목회하시는 다섯 가정 정도 모이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14. 기타 하시고 싶은 이야기는?

 

 혹시 50대나 60대 교우 중에서 퇴직하고 남은 인생 농장일에 투신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이곳에 오셔서 수련 삼아 같이 일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 싶다. 내가 만약 농장 시작 하기전에 그런 기회가 있었다면 여기까지 정착하는 과정이 훨씬 순탄하고 수월했을 것 같다. 그런 뜻에서 수련 삼아 일 해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적극 환영하고자 한다. 물론 수고비와 필요하다면 숙식도 함께 할 수 있다.

 

 농사꾼 같지 않은 두 분 얼굴에 구리빛이 있다. 열심히 노동하다 보니 여기 저기 아픈 곳 특히 안 좋았던 허리까지도 다 나았다고 한다. 누구나 늙으막에 견뎌야 하는 무료함과 무기력함이 이들에게는 없어 보였다. 연신 농장 일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틈틈히 밝게 웃는 두 분 모습에서 노동의 기쁨을 누리는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두 분이 소망하는 “하나님과 사람들 보기에 아름다운 농장”은 이미 시작된 것 아닌가 여겨진다. 

 

<서로 알아가기를 위해 두 분의 신앙 경력을 간단히 소개한다>

 변병문(70) : 예천 출신, 안수집사. 부친은 장손인 관계로 교회는 안 나가셨지만 집안 식구 모두 신자들이어서 어려서부터 교회 출석,  20대 한 동안 성경에 대한 회의가 들어 신앙의 방황을 했었으나 30대 박사 과정에서 잠언 3: 3-8 말씀(특히 5절 말씀 :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이 머리에 꽂히면서 박사 빨리 되려는 조급증을 버리고 말씀 사랑하기 시작했음. 그 때부터 요즘으로 말하면  QT를 시작하면서 신앙도 성장했고 결과적으로 학위도 빨리 받는 체험을 하게 됨.  

노경인(67) : 부산 출신 부친이 의사로 금수저 태생. 대학 미팅에서 변집사를 만났는데 첫 대면  대화에 철학적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데 매력이 있어서 결국 결혼, 시집가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시어머니 없는 시아버지 포함 10 식구 맏며느리로서 고생 엄청했다고 지금도 그 고생담 목소리가 큼. 시집 식구들 대부분 교인이어서 따라는 다녔으나  믿음은 없었는데 40대에 심장 수술 받고 회복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신앙인이 됨. 신앙 가지면서 골치 아팠던 남편 미국 유학 문제며 경제 문제 등이 놀랍게 풀려나가는 등의 많은 은혜를 체험.  1,000여명 넘게 중식 식사하던 시절 교회 봉사 부장도 역임. 

 

특별취재 / 김원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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