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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_<낙화유수> 게으른 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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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5-02 18:45 조회1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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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수> 게으른 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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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에서는 예닐곱 명 넘는 아이들이 온몸으로 흙 속에서 뛰놀고 있다. 세상에서 행복한 것 중 하나는 이렇게 맘껏, 온몸으로 뒹굴며 노는 아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수다 떨며 같이 늘어지게 한숨 자는 것이다. 오랜만에 귀촌하여 사는 구이네에서 게으른 소처럼 1박 2일을 보내고 왔다. 

 

  구이는 아궁이에 불 지펴 쑥과 나물 삶아내고, 알밤과 나는 툇마루에서, 부엌 바닥에서 종알종알 수다가 늘어진다. 구이가 아이들 데리고 방앗간에 가서 쑥과 불린 쌀을 갈아다 주어서 익반죽해서 개떡 쪄내고, 그 사이 구이는 또 무얼 할까 근질거리는 아이들 데리고 냇가에 고동 잡으러 가고, 우린 또 수다 떨다 마당에서 정구지와 방아잎 따서 부침개를 부쳤다. 마침 냇가에서 빈 바구니로 돌아온 아이들과 둘러앉아 개떡이랑 부침개 실컷 먹었다.

 

 며칠을 논문 투고한다고 밤샘 작업을 하고 지난 저녁 무렵 구이네에 도착했다. 온종일 놀다 지친 아이들과 상추와 시금치 뜯어 나물 무치고, 구이가 아궁이 짚불에 고기 구워내고, 간만에 샐러드와 아이들 좋아하는 궁중 떡볶이로 솜씨 부려본다. 만찬을 먹고는 식혜 한 잔씩 들고 보름달 가득한 툇마루(달빛이 좋아 불도 켜지 않았지)에서 회포를 풀다 어느결에 군불을 지핀 아랫목에서 혼곤히 잠들었다. 

 

 그렇게 깊은 잠을 자다 닭이 홰를 치는 소리, 부엌에서 가마솥 여닫는 소리에 잠이 깨어 옅은 안개 너머 지리산 바라보며 차 한잔 마신다. 밥 다했다는 소리에 고양이 세수로 밥상을 받았다. 묵은김치 뭉근히 끓인 찌개로 한 그릇 뚝딱 먹고는 "나 잘 거야 깨우지 마!"하고는 아랫목에 누워 잠이 들었다. 잠결에 조용해서 눈을 떠보니 잠 잘 자라고 아이들 데리고 모두 산으로 갔다(오! 땡쓰~" 또 잤다.). 허리가 아프도록 늘어지게 자고는, 툇마루로 나가니 알밤이 딸기 먹으라며 바구니를 내밀고, 옆에 있는 쑥 범벅도 먹으니 하품이 늘어진다.

 

 어제오늘은 정말이지 '양푼에 수수엿 녹여 먹으며 이름 없는 여인'처럼 늘어지게 놀았다. 구이네 동네는 보리밭이 제법 푸르고 뽕나무와 제피나무, 호도 나무가 저마다 연한 순을 내며 맘껏 자신의 향기를 뿜어내고, 꿀벌이 앵앵거렸다. 아이들의 종알거림과 웃음소리, 마당 가득 하늘과 산을 드리우고, 햇빛과 달빛에 젖어 내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날이었다.

 

글/임은주 기자(lejwood24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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