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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_<사는 이야기>엄마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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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31 06:58 조회10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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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엄마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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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네 집에 온 엄마는 현관을 들어서기 바쁘게 옷도 갈아입지 않으시고 걸레를 들고 방이며 거실, 주방 구석구석 훔치시고야 한숨 돌리시며 옷을 갈아입으신다. 딸이 차린 밥상을 고맙다며 맛있게 드시고는 설거지까지 하시려는 엄마와 늘 실랑이다. 이제 좀 딸이 해 주는 밥상도 받고, 심부름도 시키라고 하지만 도무지 딸을 써먹질 않으신다. “니가 얼마나 귀한 딸인데 쳐다만 봐도 아까운데 어떻게 일을 시키니?”

  초등시절 처음으로 문예반 선생님에게 뽑힌 동시가 ‘엄마 손’이다. 이후 내가 쓴 시는 늘 선생님에게 뽑혀 아이들 앞에서 읽히곤 했다. 

 

밥하랴

빨래하랴

쉴 새 없이 바쁜 손

열 개가 있어도 모자라겠네. 

 

  열 개가 있어도 모자란 우리 엄마 손은 병든 자식 건사하느라 팔순을 훌쩍 넘긴 지금도 쉬질 않으신다. 투병이란 험산 준령을 같이 넘어온 동지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손은 언제나 나를 향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던 그해 직장을 핑계 삼아 서울로 올라오며 독립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독립생활은 어쩌다 10년을 주기로 집으로 갔다 다시 떠나기를 반복하며 지금 용인에서 산 지도 꼬박 10년 째다. 

  차 한잔 마시며 한참을 수다를 떨다 엄마가 “어서 샤워해라. 엄마가 드레싱 해주고 자야지.” 그냥 주무시라고 해봐야 소용이 없다. 내심 상처가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으신 것이다. 사람들과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생기곤 하는 딸, 곁에 두고 같이 있어도 상처로부터 지켜주지 못하는 딸을 독립시키는 마음은 어떠셨을까? 제일 안쓰러운 것이 상처 드레싱을 내가 혼자 해야 하는 것이었을 게다. 엄마를 안심시키려 거울 두 개와 핀셋만 있으면 어떤 상처든 혼자 할 수 있으니 괜찮다고 해도 그 말이 더 안타까우셨을 것이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 상처 드레싱을 도와주시고야 잠자리에 드셨다. 예전엔 엄마가 누워 있으면 커다란 언덕 같았다. 어쩌다 낮잠이라도 주무시면 나는 엄마에게 기대어 책을 보거나 뜨개질을 하며 따뜻한 온기에 나도 잠이 들곤 했다. 

  죽을 만큼 아플 때면 어렸을 적 엄마가 끓여주시던 '조기 죽'이 생각난다. 아프면 물도 잘 마시질 못하고, 아무것도 먹질 못한다. 좀 나아질 무렵이 되어야 겨우 몇 숟갈 뜨곤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새벽 장에서 조기를 사다가 불린 쌀과 조기를 넣어 푹 끓여서 뼈를 모두 발라내고, 쪽파를 송송 썰어 넣고 간을 맞추어 먹여주셨다. 두어 끼를 그 죽을 먹고 나면 기운이 나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 기운을 차리면 토마토를 강판에 갈아놓고, 쇠고기 죽에다, 생선구이, 미역국 끓여 한 상 가득 차려 주신다. 밥 먹고 식혜까지 마시고 나면 기운이 난다. 여름이면 이빨 부실하고 시어서 잘 못 먹는 딸을 위해 포도는 즙을 내려주시고, 복숭아는 설탕 졸임을 하면 시원한 국물과 함께 복숭아가 말캉해서 씹을 필요가 없었다. 언제라도 식혜가 먹고 싶다고만 하면 한 솥을 만들어 놓으셔서 나는 들며 나며 먹기만 하면 되었다. 

  여름이면 옷마다 풀 먹이고, 다림질해서 옷장에 잘 걸어놓으셨다. 좀 낡은 모시 블라우스엔 치자를 우려 곱게 물들여 놓으시고. 그렇게 나는 한 벌씩 꺼내입으며 신선놀음 같이 여름을 지났다. 나처럼 입성이나 먹는 것, 이부자리까지 이렇게 호사를 누리는 사람이 흔치 않을 것이다. 초등시절부터 교복을 입었는데, 내 별명이 '옷깃과 운동화가 하얀 아이'였다. 손끝이 야무지신 울 엄니 덕에 한 번도 흐트러진 차림으로 다닌 적이 없다. 그래서 다들 내가 아주 부잣집 딸인 줄 알았다.

  항상 상처에서 흐르는 진물과 피고름으로 얼룩진 옷가지와 이부자리는 깨끗이 삶아, 햇볕에 널어 바짝 마르기 전 걷어서, 풀 먹여 다림질해 깔아주시면 까실까실하니 매끄러워서 절로 잠이 들었고, 옷을 입고 나가면 "네 엄마는 어찌 그리 손이 야무지냐"며 다들 한마디씩 했다. 이 호사를 얼마나 더 누릴 수 있을까? 

  언제라도 기댈 수 있었던 엄마 등이 작은 공같이 작아져서 가슴이 아프다. 살짝 치매가 와서 날짜도 헷갈리고, 눈앞에 찾는 물건을 두고도 찾아 헤매시기도 하지만 눈은 밝으셔서 늘 성경을 읽으시며 자식을 위해 기도하신다. 아들 둘을 낳고 얻은 첫딸,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을 낳고 아프게 낳아줘서 미안하다는 울 엄마. 

  엄마! 덕분에 제가 살았어요. 어느 자식이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렸어요. 엄마! 힘들고 아픈 기억만 잊어버리시고 맑은 정신으로 조금만 더 곁에 계셔주세요. 

 

글/임은주 기자(lejwood24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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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황성환님의 댓글

황성환 작성일

좋은 어머니에 좋은 딸이십니다. 어머니가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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